빚이 재산보다 많은 상태에서 부모님의 상속이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나는 상속 몫을 받지 않겠다"며 남은 재산을 형제나 자녀에게 몰아주려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이 나중에 취소될 수 있습니다. 빚을 준 채권자가 법원에 취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몫을 내려놓았는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갈립니다.
분할협의로 몫을 안 받으면 왜 문제가 되나요?
상속이 개시되면 남긴 재산은 일단 상속인들에게 귀속됩니다. 빚이 많은 상속인의 몫도 채권자가 회수할 수 있는 책임재산입니다.
여기서 그 상속인이 분할협의를 통해 "나는 안 받겠다"고 하면, 채권자가 잡을 수 있었던 재산이 그만큼 사라집니다. 민법 제406조는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때 채권자가 그 취소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같은 입장입니다. 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다29119 판결은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상속인이 분할협의에서 상속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해 채권자의 공동담보가 감소했다면 원칙적으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분할협의 자체가 재산권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상속포기도 똑같이 취소되나요?
여기서 많은 분이 헷갈립니다. 상속포기도 결국 몫을 안 받는 것인데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의문입니다.
결론은 다릅니다.
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다29307 판결은 상속포기가 민법 제406조 제1항의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상속포기의 성격에 있습니다. 상속포기는 재산을 처분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속인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일지에 관한 인적 결단입니다. 그리고 포기하면 상속개시 시점으로 소급해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됩니다(민법 제1042조).
즉 재산이 일단 내게 왔다가 빠져나가는 구조가 아니라, 애초에 오지 않은 것이 됩니다. 채권자의 책임재산이 줄어드는 그림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방법을 어떻게 구분하면 되나요?
기준은 하나입니다. 상속인 지위를 유지했는가, 벗었는가입니다.
협의분할은 상속인 지위는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재산만 받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재산에 관한 처분이므로 취소될 수 있습니다.
상속포기는 지위 자체를 벗는 것입니다. 법원에 신고해야 하고 기한도 정해져 있지만, 원칙적으로 취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몫을 안 받는다"는 같은 결과처럼 보여도 법적 취급이 다릅니다.
실무에서 짚어 둘 점
빚이 많은 상속인이라면 다음을 미리 확인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기한이 다릅니다. 상속포기는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합니다(민법 제1019조 제1항, 제1041조). 이 기간을 넘기면 선택지가 사라집니다.
포기에는 연쇄효과가 있습니다. 선순위 상속인이 모두 포기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빚이 넘어갑니다. 가족 전체의 순서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미 협의분할을 했다면 기간이 관건입니다. 채권자는 취소원인을 안 날부터 1년, 법률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 안에 소를 제기해야 합니다(민법 제406조 제2항).
취소되면 원상회복이 따릅니다. 재산 자체를 돌려놓는 것이 원칙이고, 그것이 어려우면 가액을 돈으로 배상하게 됩니다.
'원칙적으로'라는 단서를 놓치지 마십시오. 채무초과였는지, 채권자를 해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등 구체적 사정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리
빚이 재산보다 많은 상속인이 분할협의에서 자기 몫을 받지 않기로 하면, 채권자를 해치는 사해행위로 보아 취소될 수 있습니다. 반면 상속인 자격 자체를 벗는 상속포기는 재산권에 관한 행위가 아니어서 원칙적으로 취소 대상이 아닙니다.
빚 문제가 얽혀 있다면 재산 정리를 서두르기 전에, 그 방법이 뒷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사안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상황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