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남긴 예금을 확인해 보니 잔액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가족 중 누군가가 미리 인출해 간 것이고, 알고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습니다.

형법에 친족상도례(가까운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에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를 처벌 조건으로 삼던 규정)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일은 집안에서 풀도록 두자는 취지였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해도 길이 막혀 있다는 지적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이 규정이 정비되었습니다. 2025년 12월 31일부터는 가족 사이의 재산범죄도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을 물을 수 있습니다. 상속 현장에서 특히 무게가 있는 변화이므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차분히 짚어 보겠습니다.

친족상도례가 무엇이길래 처벌이 어려웠나요?

친족상도례는 형법 제328조에 있던 규정입니다. 직계혈족(부모·자녀·조부모 등)과 배우자, 그리고 함께 사는 친족 사이에 벌어진 재산범죄는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을 면제한다는 것은 범죄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죄와는 다릅니다. 잘못이 있었다는 점은 확인되지만 형벌이 따라붙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의 재산을 몰래 가져가거나, 형제가 함께 관리하던 돈을 빼돌려도 형사처벌로 이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보다 먼 친족 사이의 범행은 형이 면제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취지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 사이의 일에 국가가 형벌로 개입하기보다 집안에서 해결하도록 두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경우였습니다. 원해도 방법이 막혀 있다는 점이 계속 지적되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규정이 바뀌었나요?

헌법재판소는 2024년 6월 27일, 이 형면제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습니다(헌법불합치 결정). 피해자가 재판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를 지나치게 막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헌법불합치는 위헌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곧바로 효력을 없애지 않고, 국회가 규정을 고칠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결정 방식입니다.

이 결정에 따라 국회는 형법을 고쳤습니다. 개정안은 2025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25년 12월 3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바뀐 내용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조건 형을 면제하던 규정이 사라졌습니다. 둘째, 가족 사이의 재산범죄도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를 친고죄라고 부릅니다.

정리하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피하던 구조는 사라졌지만, 피해자의 고소가 필요하다는 점은 남아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알아서 나서 주기를 기다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전에 벌어진 일도 고소할 수 있나요?

시점이 중요합니다.

개정된 규정은 헌재 결정일인 2024년 6월 27일 이후에 벌어진 일부터 적용됩니다. 그 이후의 재산범죄라면 고소를 통해 처벌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벌어진 일에는 특례가 마련되었습니다. 시행일부터 6개월 안에 고소하면 처벌을 물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닫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이 특례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과거의 인출이나 재산 은닉을 문제 삼을 생각이라면, 계좌 내역 등 자료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까지 감안해 일정부터 확인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상속 다툼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나요?

이 변화의 무게는 상속에서 특히 큽니다.

그동안 가족이 고인의 예금을 몰래 인출하거나 상속재산을 빼돌려도, 대응은 주로 민사에 머물렀습니다.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하거나 숨긴 재산을 찾아 돌려받는 방식이었습니다. 형사 고소는 친족상도례에 막혀 실익이 크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가족이 상속재산이나 고인의 재산을 빼돌린 경우, 상황에 따라 형사 고소로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민사로 돈을 돌려받는 절차와 형사 대응을 함께 검토할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두 절차의 목적은 다릅니다. 형사는 처벌 여부를 가리는 절차이고, 빼돌려진 재산을 실제로 돌려받는 것은 민사의 몫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되찾고 싶은지에 따라 어느 쪽을 먼저 쓸지, 둘을 함께 쓸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형사 고소가 언제나 좋은 선택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형사 고소는 가족 사이의 감정이 걸린 문제입니다. 한 번 시작하면 관계 회복이 어려워지고, 남은 상속 절차 전체가 대립 구도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또 사실관계가 분명해야 처벌로 이어집니다. 누가 언제 얼마를 인출했고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가 자료로 드러나야 합니다. 인출 사실만으로 곧바로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정에서 관리하던 돈이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갈등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압박 카드로 쓸 생각에서 시작한 고소가 정작 재산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사 대응이 가능해진 것과 그것이 최선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되찾고 싶은지부터 정한 뒤에 방법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정리

친족상도례가 정비되면서, 가족 사이의 재산범죄도 고소하면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4년 6월 27일 이후에 벌어진 일이 적용 대상이고, 그 이전의 일도 시행일부터 6개월 안에 고소하면 다툴 수 있는 특례가 있습니다.

상속에서는 가족이 재산을 몰래 빼돌린 경우, 기존의 민사 대응에 더해 형사 대응까지 검토할 수 있게 된 변화입니다. 다만 고소가 필요하고 사실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감정에 앞서 자료를 확보하고 대응 방법을 신중히 저울질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안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상황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